런던베이글뮤지엄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된 이효정 대표의 에세이 '료의 생각 없는 생각'에는 일상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생각들이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을 조용히 꺼내 보이면서도, 마음속에 그대로 머물게 한다. 정리되지 않아서 더 진짜로 느껴지는 감정들이 매력 있게 다가온다. 무엇인가를 주정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잔잔하게 본인의 마음을 전달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나의 생각 없는 생각도 조금은 괜찮아 보인다.
지나가는 마음도 괜찮다
나이에 구속받지 않고, 남들 시선속에서 살고 있지 않는 저자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인터뷰를 꽤 자주 보았고, 책 출간 소식에 서점을 방문했다. 책 출간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책은 본인의 일기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깥으로 꺼내놓지 못하는 말과 감정들도 일기장안에서는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의 진솔한 하루하루가 궁금했다. 일기장을 토대로 출간했다는 저자의 말과 같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맥락 없는 그때그때의 생각들'을 이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흩뜨려진 생각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을 모아보니 어떤 감정의 선명함이 보였다. 읽는 사람마다 그 감정들을 다르게 해석할 테니 아마 조금이라도 정답에 가까운 감정의 정체는 저자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설득하거나 결론을 내리는 문장이 없다. 흩어진 문장들 사이 공백은 독자에게 본인의 생각을 투영시킬 수 있는 편안한 공백이 되어준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모든 마음이 사실 소중한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의 일상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 그날그날 떠오른 감정의 유효기간은 짧다고 생각했다. 마치 하루살이처럼 그날 하루가 지나면 잊혀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이 사실 하루살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은 개인적인 일기장은 정직하다고 느껴졌다. 누군가의 포장되지 않는 날것을 본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또 그 날것들이 꽤나 멋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생각 없는 생각들에는 어떤 선명한 감정이 보일지 궁금했다. 어떤 특정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특별한 마음이 아니더라도 정돈되지 않은 사소한 마음도 꽤나 멋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정의 결말을 정하지 않는 방식
보통의 글을 보면 맥락을 정해놓고 하나의 결론을 향해 움직인다. 반면, 이 책은 구조화되어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정 결론이나 목표없이 일상의 감정들을 순서 없이 내놓았다는 말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그런 무질서함과 흐릿함이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감정이란 원래 결말도 없고 질서가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백 이 많은 글 사이로 독자에게 호흡할 공간을 주는 이 책은 읽는 동안 가벼운 마음을 제공해 준다. 멋진 옷을 차려입지 않은 마음이 담긴 문장들은 읽는 사람에게 마음을 단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을 준다. 지금의 내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 이유 없이 가라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 그럼에도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위로의 책이 아닌데 어딘가 위로가 되는 책은 공간 안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마음이 쉬고 싶을 때마다 여러 번 꺼내 읽을 것 같다. 일기장에 가끔 거짓말을 쓰는 나에게는 누군가의 여백 있는 글들이 많은 위로가 된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마음들과 결말이 없는 감정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책 속에서 머물게 한다. 목표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구석으로 넣어뒀던 사소한 나의 진짜 감정들을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된다. 결말이 있는 감정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 모든 감정들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음을 책을 읽는 동안 깨닫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위로
나는 에세이 책을 참 좋아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고, 그들이 본인들의 삶을 서술하는 방식이 재미있었다. 같은 환경안에서 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행동양식을 보인다. 다양한 사건들도 궁금했지만 사람들이 사건에 대처하는 무수한 행동양식들이 궁금했다. 에세이를 보고 나면 저자와 나 사이에 차이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 차이는 에세이의 저자가 나와 전혀 다른 종족의 사람인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크기다. '료의 생각 없는 생각' 또한 F&B 사업에서 큰 성과를 이뤄낸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에 비범한 사람의 비범한 생각들이 적혀있을 것만 같았다. 책을 읽고 나면 내 인생을 반성해야 할 것만 같았다. 공부하듯이 읽어야 하는지도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열자마자 그 생각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책 속에 문장들은 누군가를 향한 조언이나 격려 같은 건 없다. 저자의 감정을 지나치는 담담한 문장들만이 살고 있을 뿐이다. 단순한 형태의 문장들은 이상하게도 마음에 깊게 남는다. 나는 독서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읽었던 책의 내용들이 모두 휘발되어 버린다. 결국 남는건 그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마음 상태뿐이다. "내가 그랬듯, 당신도 그러길 바란다."라는 책 속의 료의 마음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그 담담하고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글들을 훔쳐보듯 조용히 읽었던 시간들이 꽤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글이 화려하게 포장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다. 생각 없는 생각들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나를 지탱해 주는 작은 감정들이 된다는 것을 배운다. 세상에 화려함에 지쳤다면 사소한 감정에서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