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의 겉표면만 보았을 때는 환경 또는 자연과 관련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처음 예상했던 내용과는 정반대의 소설이지만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장진영 작가의 장편소설 '치치새가 사는 숲'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각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다시 듣게 되는 소설이다. 열네 살 소녀 치치림이 겪은 일은 누가 보아도 끔찍한 기억이다. 그러나 그 기억은 소녀의 언어로 표현했을 때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감싸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소녀가 '사랑'으로 포장했던 기억의 진실한 무게가 드러난다.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교차시켜, 인간이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며 견디는지를 조용히 따라간다.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기억은 지금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느냐고. 기억 속 어디엔가 아름답게 포장해 놨던 인생의 사건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소설이다.
1.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이름, 치치새
이 소설의 주인공 치치림은 현실에서 도망쳐 상상의 공간을 만든다. 그곳에서 자신은 ‘치치새’가 되어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이는 단순한 소녀의 공상과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장 원초적인 자기 방어기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하나씩 갖고 있는 공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대비를 주인공을 통해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포장지 속에 쌓인 나의 기억 파편들이 떠올랐다. 포장지 속에 쌓인 그 기억들이 어떤 이름으로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또한 그 기억이 객관적인 사실일지 주관적인 의견인지도 모른다. 정확한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의 기억창고 어딘가에 예쁜 포장지 속 꾹 눌러뒀던 감정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상기시켰다. 치치새라는 존재는 그래서 내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단순한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 나에게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집합체로 느껴졌다. 치치새라는 캐릭터를 통해 소설은 말하지 못한 시간들이 어떤 무게로 사람 안에 머무는지를 너무도 정교하게 묘사한다. 너무 정교하고 때론 적나라하기 때문에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상처를 설명하지 않고 환경의 묘사와 대사의 공백만으로도 주인공의 감정이 전달되기에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최치림이라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회피하는 부정적인 공간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나'를 보호할 수 있는 회피 공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가려진 것들
소설에서 가장 마음아팠던 부분은 치치림이 자신이 받은 관심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또한 그런 사랑들을 "내 사랑은 악취미"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소녀가 사용하는 단어들과 묘사하는 사랑이 그녀의 곪은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처절한 절규처럼 들렸다. 최치림은 '차장'이라는 인물과의 관계에서 사랑받고 있고,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성인이 된 ‘나’는 그것이 명백한 폭력이고, 통제였음을 인식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치치림의 모습에서 사랑의 위험성을 느꼈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는지 알기 때문에 마음 한편이 저려왔다. 감정이 먼저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나중으로 밀려난 이 구조 안에서, 피해자는 오히려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책을 덮고 난 후, 과거의 어떤 감정들이 과연 진짜였는지 나의 기억 파편들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객관적 사실과 사건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는 일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당시에는 그 감정이 분명했고, 감정이 곧 나에게는 사실이었다. 지금 떠올리면 내가 기억하고 있고 기억하고 싶은 사건들에는 맹목적인 인정 욕구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은 감정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너짐을 다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보여준다. 치치림에 살고 있는 치치새의 묘사를 너무 담담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 더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3. 말하지 못한 시간과의 화해
치치림은 끝내 아무에게도 사건의 전말을 말하지 못한다. 그녀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겁고 어두운 덩어리가 되어 기억 저편에 가라앉는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흐르지 않고, 고여서 썩는다. 소녀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고요한 파괴 과정을 묘사하는 데에 작가는 너무 섬세하게 표현한다. 책 겉표지에 나와있는 푸르른 숲 속들과 대비되며 불쾌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이 무거워졌던 부분은 침묵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차라리 울거나 화내는 것보다 침묵이 더 잔혹하게 느껴진다. 그 암흑 같은 침묵의 시간을 최치림은 혼자서 견뎌내며 통과해 낸다. 하지만 본인은 그 시간 속에서 영원히 통과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만 자신의 기억을 다르게 포장하여 본인을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숲 속으로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이 책의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겪은 일 중 일부는 털어놓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그 이야기의 진실을 들려줘야 한다.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이 아닌 객관적인 진실을 본인 스스로에게 들려줘야 한다. 치치림의 마지막 장면은 타인을 향한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용서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장면은 읽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며 독자 자신의 기억 속으로 향하게 한다.
'치치새가 사는 숲' 은 읽고 나면 한동안 말을 아끼게 되고,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을 품게 되는 책이다. 이 소설은 누구나 갖고 있는 말할 수 없는 기억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보며 문학이라는 도구는 다양한 문체들로 표현된 글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내면의 상처에 대한 재해석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일임을 작가는 조용히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