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한편에 꽂혀 있는 눈에 띄는 제목에 책을 뽑았다. 책 표면에 행복해 보이는 여성의 모습과 함께 내가 늘 품고 있던 생각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눈 떴을 때 늘 새로운 풍경이라면 행복할까?", "세계 여행자들은 진짜 매일 행복할까?”라는 내가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질문에 “야드라, 떠나보니 살겠더라!”라고 고민 없이 대답하는 한 사람의 세계가 담겨 있다. 26년 6개월 교사 생활을 마치고 세계로 걸어 나가 현재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는 65세의 여성의 멋진 삶이 담겨 있다. 책 표지의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파이어 족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스스로의 삶의 속도로 일과 시간을 재구성하며 떠났던 그녀가 참 멋있게 느껴진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여행지 선택도 “여기 좋아요”라는 말 한마디 즉시 표를 끊는 호기심을 닮고 싶다.
떠나야만 알게 되는 나의 모습
여행의 동력은 과소비나 내 삶을 그럴듯하게 전시하기 위한 과시의 도구가 아니라 넘치는 호기심과 사랑이라는 자기 고백이다. 책을 읽다 보면 텍스트 곳곳에서 그녀의 즉흥성과 가벼움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누군가는 이 에세이를 보면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는 그녀가 참 용기 있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실행하는 것은 어렵고, 나이가 들수록 얽매여 있다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아는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흥은 무모함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 필요한 시기를 알아채는 민감성’에서 이라고 생각한다. 일의 무게가 삶을 가리던 순간, 그녀는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전환한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선택하는 세계 여행자 쨍쨍의 모습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낯선 환경에서 본인 스스로를 재정의 하는 과정이었다. 익숙한 환경과 문화, 일상에서는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불편함과 소소한 사건으로 벌어지는 절망감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쨍쨍이 본인 삶에 대해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토록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국적인 풍경이나 새로운 경험이 아닌 나 스스로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소한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오직 내 선택으로만 하루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의 모든 감각들이 켜져 있는 생생한 시간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책의 저자인 쨍쨍의 에세이를 보다 보면 여행은 소비, 경험, 도피와 같은 정의보다는 감각 훈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장수 사회에서 은퇴는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출발점이다. ‘인생의 다음 장을 멋지게 살아보기’를 위한 시작으로 여행을 택한 쨍쨍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떠나는 기술은 결국 살아내는 기술이다. 그리고 이 기술은 오직 스스로의 호기심을 신뢰하는 연습에서 시작한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과 삶의 태도
책의 저자인 쨍쨍이 60대가 넘어 혼자 세계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내용이 인상깊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편안함과 안락함에서 벗어나는 게 힘들다는 것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발견하곤 한다. 여행을 젊고 자유로운 사람들의 특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말에 어느 정도 긍정하는 이유는 여행에는 체력과 건강이 전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책 중간중간 쨍쨍의 사진이 담겨있다. 사진을 보다 보면 그녀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을 즐겨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색은 태도를 입는 가장 쉬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입고 즐겨하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들은 나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이 수축된다는 어떠한 통념을 해체하게 해 준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을 고르고, 동작을 고르고, 순간을 고르는 주체성을 본받고 싶다. 나이가 ‘허락’하는 넉넉함,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는 허가를 알록달록한 옷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쨍쨍이 여행하는 방식은 나에게 대담함을 넘어 무모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순간 그녀의 여행 방식은 무모함 보다는 유연한 상황 판단과 즐거움 사이의 균형을 학습한 결과물이라는 표현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었다고 작아지지 않는 그녀의 주체성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그녀의 에세이를 읽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읽는 동안 나 자신에게 질문을 여러 번 하게 된다. “나는 어떤 색으로 나의 삶의 태도를 입고 유지할 것인가?”, “나는 인생에서 어떤 순간들을 골라 넣고 싶은가?” 이 책이 선물하는 건 그런 분류의 질문들이다. 나는 이런 질문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의 분류라고 생각한다. 답은 각자의 일상에서 매일 선택되고 완성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짧다.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입고 싶은 것 입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다채로운 삶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해 본다.
낯선 환경에서 다시 쓰는 일상과 여행의 완성
그녀의 여행과 함께 책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떠남은 언제나 돌아온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여행이 즐거운 것은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하나의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마다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술’을 연습한다. 숙소를 찾고, 시장을 걷고, 새로운 공간에서 요리를 하는 루틴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술'의 작은 의식들이 된다. 이런 방식의 작은 의식들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가까운 공원에서 산책하기, 아침 햇볕 받으며 10분 스트레칭하기, 처음 가보는 동네 식당에서 새로운 메뉴 먹어보기 같은 작은 루틴들은 물리적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여행 감각을 현재형으로 유지시킬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이 책은 새로운 국경을 넘어 다니는 모험담이라기보다, 일상을 재배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술서라는 명칭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 한다. 읽는 사람에게 당장 세계일주를 떠나야 한다고 권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만의 방식으로 또 다른 세계를 여는 문’을 찾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 책의 끝에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여행이라는 주제에 대한 재정의를 내렸다. '내 인생의 감각을 업데이트시켜주는 도구'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내가 재정의한 여행의 의미이다.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변곡점, 관계의 재구성, 삶의 우선순위가 뒤섞이는 시기에 자신만의 감각은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책은 자신에게 맞는 리듬을 찾는 다양한 실험을 장려하고, 작고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그 다음장은 쨍쨍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하루가 다음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전시된 타인의 삶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나의 삶을 재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책의 저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부디 지금처럼 멋지게 살아주기를 소원한다. 나 또한 그녀의 그림자를 보고 나이에 굴복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다짐을 한다. 그녀가 남긴 말에 나도 응답하듯 한 줄을 남긴다. "인생 짧으니, 후회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고 살겠어요."